의과대생은 집단 휴학 신청, 세브란스는 비상진료체제

지난 2월 6일, 정부는 오는 2025학년도 의과대 입학 정원을 2천 명 증원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고령화 등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감안해 2035년까지 1만 명 수준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우리대학교 의과대 학생은 집단 휴학을 신청했고, 신촌세브란스병원(아래 세브란스)은 의료 공백으로 인해 비상진료체제에 돌입했다.

 

▶▶ 사람이 없는 세브란스병원 접수 창구의 모습. 의료 공백으로 전반적인 운영을 축소한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5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 사람이 없는 세브란스병원 접수 창구의 모습. 의료 공백으로 전반적인 운영을 축소한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5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의과대생 593명 휴학계 제출,
집단 유급이 불러올 파장 우려돼

 

지난 2월 20일, 우리대학교 의과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아래 비시대위)는 “대한민국 의료정책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비시대위는 의과대 학생회장단을 위원장단으로 두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지원을 받아 구성된 단체로, 의과대 운영위원회에서 인준받았다. 비시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의과대 소속 593명 학생 일동이 집단 휴학계를 제출함으로써 정부의 근거 없는 정책 추진에 단호히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한다”며 “모든 강의 및 실습수업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 결과 해당 학생들의 휴학계가 아직까지 수리되지 않아 등록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과 4학년 재학생 A씨는 “휴학계를 제출했음에도 학교가 본등록이나 추가등록을 하라고 공지했다”며 “아직 휴학계가 수리되지 않아 등록을 하지 않으면 미등록 제적 상태가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대학교 「의과대학 학사에 관한 내규」 제6장에 의하면 학생들이 수업일수의 1/3 이상을 결석하면 Non-pass를 받고, 한 과목이라도 Non-pass를 받으면 유급 처리된다. 지난 14일 한림대 의과대는 두 달 가까이 수업을 거부한 본과 1학년 83명에게 유급을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 의과대는 학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학사일정 자체를 연기하고 있어 학생들의 결석일수가 누적되지 않고 있다. 본과 4학년 재학생 A씨는 “모든 3, 4학년 의과대 수업이 멈춘 상태”라며 “휴학계를 내지 않은 소수의 학생도 있지만, 모든 수업이 휴강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등록을 하더라도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집단 휴학계 제출 및 등록 거부가 지속되면 의과대 학사일정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우리대학교 의과대 산부인과 B교수는 “의과대 전공과목 수는 타 단과대에 비해 최소 3배 이상”이라며 “학생들이 지금 돌아온다고 해도 남은 학사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본과 4학년 재학생 C씨는 “주변에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제로 1년을 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휴학계를 제출한 동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본과 3학년 재학생 D씨 역시 “휴학계를 내기로 결심한 동시에 유급을 각오했다”며 “초반에는 집단 유급을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유급을 결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집단 유급이 현실이 되면, 유급 인원으로 인해 학사 운영 전반에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아청소년과 E교수는 “추후 강의가 재개되면 늘어난 수강인원으로 강의실이 부족할 수 있고, 의과대 기본 실습을 진행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며 “환자 진료 시 의료진 숫자보다 참관하는 학생 수가 더 많아 적절한 교육과 진료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세브란스의 인턴 수급 및 전공의 배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범진호 임상 부교수(의과대·응급의학과)는 “집단 유급 시 병원에서는 한 해의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크게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가 한 해 동안 아예 배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전국 수련 병원에서 진료에 차질이 생기고,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비어있는 우리대학교 의과대 강의실의 모습. 지난 2월 20일, 우리대학교 의과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의과대 소속 593명 학생 일동이 집단 휴학계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 비어있는 우리대학교 의과대 강의실의 모습. 지난 2월 20일, 우리대학교 의과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의과대 소속 593명 학생 일동이 집단 휴학계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의료 공백에 고통받는
세브란스 의료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1시 기준 100개 수련 병원 전공의 1만 2천912명 중 92.9%(1만 1천994명)의 전공의가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했다. 세브란스도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을 피할 수 없었다. 현재 세브란스는 운영 전반을 축소하고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와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범 교수는 “병실 가동률은 평소 대비 40~50%, 응급실은 20~30%를 유지하며 경증보다는 중증 환자를 우선해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B교수는 “마취과도 전공의와 전임의 이탈로 인력이 부족해 평소처럼 수술실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소아, 분만, 응급, 암 수술 등 위급한 수술 위주로 평소 대비 20% 이하의 수준으로 수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공의 사직 여파로 의료진이 부족해지면서 교수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범 교수는 “원래 응급실에는 한 듀티*당 교수 2명, 인턴 4명, 전공의 4명이 근무했지만, 지금은 교수 2명만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24시간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교수들이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업무를 버티고 있어 피로가 극심하다”고 전했다. 흉부외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흉부외과 F교수는 “인턴 및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주 2회 당직 근무를 하고, 주 100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 B교수 역시 “4주째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면서 응급실 호출을 받고, 다음 날 아침 외래 진료를 보거나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의료 현장을 이탈한 총 4천944명의 전공의에게 면허 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사전 통지했다. 흉부외과 F교수는 “전공의들이 행정 처분을 받게 되면 향후 5년 동안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의 정상 진료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은 병원의 재정 위기로 이어졌다. 지난 15일, 세브란스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우리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연세의료원장인 금기창 교수(의과대·방사선종양)는 의료원 전체에 “경영 유지를 위한 협조를 부탁한다”는 서신을 발송했다. 금 교수는 서신을 통해 “세브란스를 비롯한 산하 병원들의 진료 시스템 유지의 어려움과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 문제가 날로 커지고 있다”며 “당장 급하지 않은 지출을 줄이고, 사전에 승인된 사업에 대해서도 추진 시기와 규모 등을 한 번 더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의료계가 말하는 정책의 당위성 부족
이공계가 바라본 ‘의과대 쏠림 현상’

 

정부의 의과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우리대학교 의과대 학생 및 세브란스 의료진은 ▲의과대 증원의 당위성 부족 ▲선행 제도의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의과대 증원의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은 의과대 증원이 낙수효과를 불러오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김문규 교수(의과대·소아청소년)는 “수련 중인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에 비전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일부 분야는 10년 뒤 수술할 의사가 전부 은퇴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인데 단순히 양을 늘려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본과 4학년 재학생 A씨 또한 “증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기피하던 필수의료과를 선택하는 낙수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과대 증원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필수의료과의 ▲의료 수가** ▲업무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흉부외과 F교수는 “필수의료과는 수가가 낮아 전문의를 고용할수록 적자가 난다"며 “지방에 소아과가 없는 이유 역시 지방 소아과의 수가 수준으로는 병원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개혁 정책인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공약 중 하나로 ‘의료 수가 인상’을 내세우지만, 의과대 학생 및 세브란스 의료진은 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비시대위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발표해 “5년간 10조원 투입 외 구체적인 재정 계획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의료 수가 인상 공약의 구체성 부족을 지적했다.

업무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 또한 거세다. F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지만, 환자가 잘못되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전했다. 본과 4학년 재학생 A씨 역시 “필수의료과의 경우 의료 소송에 시달리는 등 점점 업무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며 “필수의료과의 업무 환경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의과대 증원으로 인해 이공계 인재가 의과대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전국 40개 의과대는 교육부에 총 3천401명 증원을 신청했고, 우리대학교 의과대는 정원 10명 증원을 신청했다. 대규모 증원으로 인해 ‘의과대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202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우리대학교 계약학과인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최초합격자 25명 중 23명(92%)이 등록하지 않았으며, 거듭된 추가 합격에도 총 55명이 등록을 포기해 220%의 미등록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3학년도 미등록률 130%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컴퓨터과학과 역시 정시 모집 인원 35명 중 미등록자는 64명으로 미등록률이 182.86%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대학교 공과대 G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의과대 증원이 우리대학교 이공계 인재 유출을 심화할 수 있다”면서도 “장기간으로 본다면 의과대 쏠림 현상이 서서히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대우 교수(공과대·화생공) 역시 “의과대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인재 유출이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며 “장기적으로는 과학계에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의과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지만, 여전히 정부와 의료계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의료계의 정상화를 위해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글·사진 도유경 기자
bodo_snowman@yonsei.ac.kr
이세빈 기자
bodo_sevinteen@yonsei.ac.kr

 

* 듀티: 근무 시간표
** 의료 수가: 의료 제공자에게 제공되는 비용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고 고시한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