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화 문화부장(인예철학/사회·18)
박준화 문화부장(인예철학/사회·18)

나는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입바른 소릴 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낙향했다는 가문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계란으로 바위 칠 수 있는 사람, 모난 돌로서 정 맞을 수 있는 사람,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다. 떳떳하게 정의를 논하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젊은이가 되고 싶었다. 10년 전에 고등학교 은사이신 강문선 동문(국문·76)에게 『연세춘추』 기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그 꿈의 연장선이었다. 

반면 이 꿈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내게 비겁한 인간의 표상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 이들이 미웠다.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얄팍한 논리로 정당화하려 드는 사람이 고까웠다. 감정이 앞서 타인의 합리적인 의견을 존중하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꼬웠다. 그러나 그 미움은 사실 거울 속 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미워하면 닮는가. 아니면 닮았기에 미워하는가. 어울리지 않게 3개월 동안 감투를 써보니 나의 한계가 참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어물쩍 넘어가고 싶어 했다. 내 어리석음을 얄팍한 논리로 정당화하려 했는지도, 감정이 앞서 타인의 합리적인 의견을 존중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명확한 기준을 밝히기보다는, 다른 데서 그 권위의 근거를 찾으려 했다. 겁이 났던 걸까. 

 

“술 한잔 마셨습니다... 영화가 잘 안되도 좋습니다. 하지만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영화가 별로 일수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기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5년 전, 흥행에 실패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주연 배우가 술김에 올린 글이 대중의 조롱을 받았다. 술에 취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그 모습은 내게도 볼썽사나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의 UBD 지수*를 계산하며 그의 노력을 비웃기도 했다. 맞춤법의 상태, 영화의 실패, 무엇보다 그를 조롱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렸다. 

이제서야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싼다. 적어도 그는 세간의 인정은 받지 못했을지언정 최선을 다했다. 술에 취해서까지 자신의 뜨거운 고민과 치열한 노력, 그리고 감정을 용기 있게 드러냈다. 술이 깬 다음날 부끄러움에 후회막심했을 수는 있어도, 그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 당시만큼은 자신에게도, 대중에게도 부끄러움 없이 온전히 자신으로서 행동한 것이다. 누가 감히 그를 비웃을 수 있을까. 

묻는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무엇에 최선을 다해 진심을 쏟았는가. 무엇을 다른 이의 가슴에 남겼는가. 다시 묻는다. 지난 3개월간 이곳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진심을 쏟았는가. 남의 그림자에 비겁하게 숨어 내 안위만 돌보지 않았나. 리더의 자질을 운운하던 지난 학기의 나에게 과연 떳떳한가. 『연세춘추』 기자가 되겠다고 은사님께 약속한 10년 전의 나에게 얼마나 당당한가.

 

* UBD 지수: 문화 산업 콘텐츠, 특히 영화 티켓 판매량의 단위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 ‘엄복동’의 약자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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