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는 대학생들을 살펴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는 말했다.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사랑이 세 번째 단계에 다다른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애환을 살펴봤다.
‘아마추어’ 영화를 넘어
‘학생 영화’는 학생들이 ▲시나리오 집필 ▲캐스팅 ▲연기 ▲촬영 ▲편집까지 전담하는 영화로, 주로 대학생들의 독립 영화를 일컫는다. 학생 영화가 대학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80년대부터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이상인 교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대학생들이 독재 시기 청년 의문사를 다룬 영화를 직접 만든 것이 학생 영화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1979년에 서울대 영화 동아리 ‘얄라셩’이 설립된 이후, 1980년대부터 주요 대학에 영화 제작 동아리가 일제히 생겨났다”며 “이때부터 공동체를 구성해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학생 활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학생 영화는 상업 영화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는 “학생 영화는 흥행 압박에서 자유로워 독립적으로 영화를 작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이현승 교수는 “학생 영화는 상업 자본이 투자되지 않는 만큼 자기 생각을 영화의 순수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학생 영화는 신인 감독을 발굴해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상인 교수는 “대학생들이 제작한 독립 영화가 한국 영화계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며 “지난 1980년대 학생 제작 영화의 주역들이 2000년 이후의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봉준호(사회·88), 유재선(ECON·08) 동문 모두 우리대학교 영화 제작 동아리에서 꿈을 키운 영화감독들이다.
나아가 학생 영화는 기성 영화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지난 1990년 개봉한 영화 『파업전야』는 대학생들이 직접 결성한 소규모 영화제작사 ‘장산곶매’에서 제작됐다. 이 영화는 노동자 투쟁을 다뤘다는 이유로 당시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학가와 공장의 임시 극장에서 비공개 순회 상영을 지속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96년 영화 사전심의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또한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사후심의 제도의 확립도 이뤄냈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파업전야』는 학생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인상적인 사례”라고 평했다.
대학생 영화인이 맞닥뜨리는 현실의 벽
학생 영화는 여러 현실적 제약에 늘 직면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촬영을 포함한 제작 경비 전반을 감독 사비로 충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영화 동아리 ‘몽상가들’ 회장 이진명(사학·19)씨는 “영화를 한 번 찍을 때 감독이 지출하는 비용은 200만 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예산 부족 문제는 영화 제작에서 여러 차질을 빚는다. 유 교수는 “편집기나 조명 같은 고액 장비는 영화 전문 교육 기관이 아니고서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영화 동아리 ‘프로메테우스’ 부원 김남훈(문인·19)씨는 “우리대학교의 공간을 대관할 때조차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며 “카메라 대여료는 대여일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제작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은 점도 문제다. 이화여대 영화 동아리 ‘EIF’ 관계자 A씨는“▲스크립터* ▲배우 및 스태프 식사 관리 ▲현장 통제 등을 단 네 명의 인원만으로 감당해야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동아리 내 인원이 적지 않아도 경험이 풍부한 부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몽상가들 부원 지혜민(경제·19)씨는 “촬영 감독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 특정 부원의 업무가 가중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성공적으로 제작하더라도 영화를 출품할 기회가 부족하다. 프로메테우스 회장 김가은(QRM·21)씨는 “상영회나 동아리 공식 유튜브에 공개하지 못한 영화들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이진명씨 역시 “영화가 극장까지 진출하지도 못한 채 결국 감독의 외장 하드에 묵혀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학생 영화의 출품 기회가 줄어들면, 학생 영화를 향한 관심과 참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상인 교수는 “독립 영화와 학생 영화의 상영 가능한 극장이 극소수”라며 “배급과 상영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2의 봉준호를 만나기 위해서
목원대 연극영화영상학부 김병정 교수는 “현재 독립 영화에 대한 지원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은 2024년부터는 장편 독립 영화 지원 대상자에서 연출자가 제외되고 제작사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건이 강화됐다.
그럼에도 대학생 영화인을 발굴하려는 영화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0년 ‘강릉국제영화제(GIFF)’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편영화 공모전이 열렸다. 2023년에는 ‘충남 전국 대학 영화 공모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대한민국대학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전국의 대학생 영화인들의 커뮤니티 역할과 교육의 연계를 도모하고, 매년 ‘대한민국대학영화제(UNIFF)’도 열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열렸던 ‘미쟝센 단편영화제’ 역시 대학생 영화인과 기성 영화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다.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박찬욱, 봉준호와 같은 유명 감독을 집행위원장으로 하고, 독창적이면서도 상업적인 성공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을 발굴하는 기능을 해 왔다. 이상인 교수는 “미쟝센 단편영화제 같은 독립 영화제는 기성 영화계가 멀리하는 실험 영화마저도 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황철민 교수는 “학생 영화는 실험실이 될 수 있다”며 “한국 영화 전체의 성장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대학교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서 시작한 봉준호 감독, 몽상가들에서 시작한 유재선 감독처럼 학생 영화는 오늘날 한국 영화를 선도하는 감독들의 출발점이다. 한국 영화계의 미래, 학생 영화. 훗날 한국 영화계를 책임질 대학생 영화인들을 뒷받침할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글 최혜정 기자
culture_shock@yonsei.ac.kr
황선우 기자
muna_sudal@yonsei.ac.kr
그림 노태린 작가(노문·21)
<사진제공 프로메테우스>
* 스크립터: 촬영 현장이 대본대로 촬영되는지 확인하고 이를 기록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