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환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인문융합교육원 객원교수)
장철환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인문융합교육원 객원교수)

 

짊어져야 할 것은 짐만이 아니다. 한 문장이 있다. 명치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파도치는……. “아마 나 자신도 우리의 생을 망쳐놓은 만큼 스스로 망가져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지금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다.” 정현종 시인의 산문 「말의 살」의 일절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학생들과 함께 읽는다. 아니, 진다. 혼자는 평생을 져도 다 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먼저, 나에게 비극이란 성공의 대척점, 곧 ‘실패로서의 비극’으로 존재함을 고백해야겠다. 성공하는 것만이 실패를 보상하고 비극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자기를 파탄하는 일이라고 우회적으로 고지한다. 소위 ‘성공’을 위한 도정이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과정과 겹쳐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를 지탱해 온 실패로서의 비극관이 아연실색하는 광경이다. 

내가 이런 참경(慘景)을 학기마다 반복하는 이유는, 대시인의 명문(名文)에 의탁해 학생들에게 나의 패배 의식을 전가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들이 져 왔던 숱한 허위의 짐들을 이제 그만 내려놓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직도 그 짐을 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두 개의 비극을 동시에 지고 있는 것이다, 지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알면서도 지고 있는 진퇴양난에서 내가 혼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디 학생들은 이런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를!

이런 실패는 성공의 신화 창출을 통해 실패로서의 비극을 부단히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성공’이란 미명(美名) 아래 편을 가르고 줄을 세우기에 기세등등한 자들이 전방위적으로 횡행하는 시대다. 캠퍼스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도 입시와 성적과 취업과 같은 성공의 굴레에 갇힌 지 이미 오래다. 전문직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나의 비극”을 돌아볼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속한 문과대학은 어떤가, 아니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의 위기를 넘어 붕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직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소위 ‘루저(loser)’로서의 열패 의식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성공’의 희망이 그 너머에 있다는 생각이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이후의 상황은 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이미 이런 얘기 자체가 식상(食傷)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묻는 것은 헛된 일처럼 보인다. 실패로서의 비극을 양산하는 견고한 시스템에 이런 물음이 질 것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이야말로 “나의 비극”을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하여, 아프지만 다시 묻는다. 나는,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 부디 실패로서의 비극이 실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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