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패냐, 정부의 시장개입이냐… 딜레마에 빠진 산업은행

지난 16일 KDB산업은행(아래 산은)은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국내에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항공사가 등장한다는 기대감과 함께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통합계획이 등장한 배경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지속적인 재정난이 있습니다. 산은 이동걸 회장에 따르면,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정책자금 3조 6천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그럼에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 2018년 814%에 이어 2019년에는 1천795%를 기록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산은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전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통보했습니다. 이미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고, 아시아나항공을 되살릴 방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산은은 지난 2019년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매각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지지부진한 매각협상이 지난 9월 마침내 결렬되자, 산은은 ‘항공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방안을 구상합니다. 글로벌 항공산업 경쟁 심화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사태 장기화로 인한 항공산업 침체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발표 이후 대한항공 역시 적극적으로 인수합병 절차에 착수하는 모습입니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실패 이후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라는 불안감에 이번 인수를 급하게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옵니다. 실제로 산은은 삼성, SK, 현대차 등의 5대 그룹에 인수의향을 타진했지만, 어떠한 그룹도 인수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은 최대협 부행장은 “아시아나항공 재무 상황에 대한 부담과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의 불확실성 등의 사유로 모두 ‘의사가 없음’을 통보받았다”며 “현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이 인수합병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두고 산은의 경영권 분쟁 개입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현재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3자 주주연합이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 전 부사장 측에 있는 사모펀드 KCGI는 “국민 혈세를 활용한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이번 인수합병의 숨겨진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인수합병의 과정 또한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합니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산은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취득함으로써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결정권을 쥐기 때문입니다. 인수합병에는 ‘산은→한진칼→대한항공’ 순으로 자금이 투입됩니다. 산은이 한진칼의 추가 주식 8천억 원어치를 매수하면 이후 한진칼은 7천300억 원으로 대한항공에서 새로 발행한 2조 5천억 규모의 주식 일부를 매수하고, 대한항공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복잡한 방식입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7일 논평에서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및 항공산업 재편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더 타당한 의사결정”이라며 “이번 거래가 성사될 경우 산은은 투자합의서의 실질적인 상대방인 조 회장 측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산은이 한진칼에 출자한 이유는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을 유지해 안정적인 지주회사 체제를 운영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최 부행장은 “산은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할시 대한항공 지분은 20%미만이 돼 지주사 요건을 위반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부과 및 위반상태 해소명령조치가 내려진다”고 소명했습니다.

이외에도 산은에게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을 유지할 시 막대한 정책자금이 투입됩니다. 이 회장은 “2개의 항공사 체제를 유지할 시 2021년 말까지 4조 8천억 원을 지원해야한다”며 “통합시 2조 3천억 원의 정책자금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시장의 흐름에 맡길 시에는 국민혈세로 투자한 주채권은행으로서 투자실패의 결과를 맞게 됩니다. 산은은 현재까지 아시아나항공에 3조 6천억 원의 돈을 빌려준 채권단입니다. 따라서 아시아나항공의 몰락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입장입니다.

만약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매출 규모 20조 원, 항공기 보유 대수 259대에 이르는 세계 7위의 거대항공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회장은 “코로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 일류 항공사로 도약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그럼에도 우려는 계속됩니다. 시민사회에서는 산은의 결정이 시장을 교란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한국항공협회 항공교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진 계열 항공사와 아시아나항공 계열 항공사의 지난 1~10월 국내·국제선 합산 점유율은 수송객 기준 59%, 화물 기준 69.7%입니다. 통합이 이뤄지면 독과점으로 인해 여객, 화물 항공료 가격의 인상과 각종 서비스 질 하락의 가능성이 큽니다. 참여연대는 “양사의 통합이 시장에 가져올 독과점 우려는 적지 않다”며 “독과점 해소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동계는 고용유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양사의 중복인력은 800~1천 명에 이르러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우기홍 사장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다”며 구조조정 가능성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중복인력의 고용계획과 같은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불안해합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입장문을 통해 “구조조정을 막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부와 산은은 이러한 우려가 실현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토교통부 김상도 실장은 “독과점 폐해를 우려할 수 있다”면서도 “노선의 폐지보다는 새 노선을 개척하거나 추가운항 필요 노선에 잉여 기관이나 인력을 투입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한진칼과 산은의 투자합의서에는 ‘한진칼이 지켜야 할 7대 의무 조항’이 포함됐습니다. 이는 산은이 한진칼의 경영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산은은 경영평가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등을 통해 한진그룹이 약속한 책임경영을 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인수합병을 두고 안팎으로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산은의 한진그룹 경영권보호냐, 항공업 살리기냐 하는 논쟁과 함께 말이죠. 1일(화) 법원은 KCGI 측이 한진칼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 아시아나항공을 회생시키지 못한다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각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산은의 몫입니다. 앞으로 산은이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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