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박사 이융남 동문을 만나다

당신은 ‘공룡’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어린 시절에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쥬라기공원’의 티라노사우르스나 ‘아기공룡 둘리’처럼 친근한 공룡 만화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공룡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공룡은 한때 지구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먼 아주 먼 과거의 ‘생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공룡을 ‘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그 보물을 찾아 우리나라부터 고비사막까지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바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선임연구원 공룡박사 이융남 동문(지질·80)이다.

공룡 is my life!! 공룡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지질과학연구원 이융남 박사

“공룡 화석은 자연이 숨겨놓은 보물이에요. 제가 찾지 못하면 영원히 그곳에 묻혀있게 될 수도 있는 보물이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공룡 화석을 찾는 일은 소풍가서 하는 ‘보물찾기’와 다름없는 즐거운 놀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보물찾기에 뛰어들게 됐을까.
“제가 어릴 때는 공룡의 ‘공’자도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지질학과도 뜻이 있어 갔다기보다 뭔가 직접 만지고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죠.”
그는 대학시절 학과공부보다는 연세교육방송국(YBS)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고 한다. 강의실보다는 방송실로 직행하는 날이 많았고 아마추어지만 방송PD 일이 적성에 맞는 듯해 방송국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처음 화석을 접하게 된 것은 지질학과 전공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게 된 3학년 무렵이었다.
“태백과 영월로 야외지질조사를 나가 ‘코노돈트’라는 조그만 화석을 채취했어요. 암석 속에 무려 4억 7천만 년 전 생물이 들어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죠.”
그때였다. 그가 지구상에서 살다간 생물들의 자취를 찾는 일에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는 방송국 취직의 유혹을 뿌리치고 ‘코노돈트’ 화석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화석을 찾아 산에 오르는 것도 자연을 좋아했던 제 성격과 잘 맞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46억년이란 엄청난 기간 동안 어떤 생물이 살았는지를 알아가는 것도 정말 즐거웠어요”라며 웃는 그를 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군대에 다녀온 후 새로운 화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공룡화석이었다.
“8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공룡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발자국이 있으니 공룡뼈도 있으리라 확신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뼈화석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죠.”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척추고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31살이라는 늦은 나이도,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공룡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뿐이었다. 
그의 용감무쌍함 덕분이었을까. 그는 좋은 조건의 장학금을 받으며 세계척추고생물학회 회장인 루이스 제이콥스 박사에게 지도를 받게 되었다.
“제이콥스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조금 놀랐어요. 슬리퍼에 찢어진 런닝셔츠 차림이었거든요.”
소탈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제이콥스 박사는 그에게 혹독한 가르침을 주었다. 척추동물에 대한 지식을 쌓으라며 수준 높은 비교해부학 강의를 듣게 했고, 심지어 의대생들과 직접 인간해부까지 하게 했다. 그렇게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1년을 더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고 난 뒤, 지난 1996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척추고생물학을 뿌리내리게 하고 제대로 공룡을 찾아보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많은 공부를 하고 왔지만 그를 찾는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2001년까지 5년 동안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공룡관련 책을 감수하며 보냈다. 그 시절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는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좋은 직장을 목표에 두고 공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저 연구하는 자체가 재미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그는 일류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애쓰고, 취직하고 나서도 진급하려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연구하던 그는 이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서 바쁘게 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공룡시’로 거듭나려는 경기도 화성시에 건립될 ‘공룡화석박물관’의 화석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공룡탐사단의 단장으로서 7개국 공룡전문가들을 이끌고 몽골 남부 고비사막에 다녀왔다. 또 국가차원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각종 고시나 공무원이 선호도 1위인 요즘, 평탄해 보이는 길만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 이융남씨는 분명 귀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가 들려주었던 일화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얼마 전 어떤 과학고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한탄을 하더군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대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 걱정이라고요. 46억년동안 차곡차곡 쌓인 화석들을 연구하다보면 인간의 삶이란 참 덧없고 짧다는 것을 느끼곤 해요.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인데 더 넓은 집과 더 맛있는 음식을 위해 안정적인 직업만 추구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다보면 저절로 명예와 돈도 따르게 된답니다.”

 

/ 글 장지현 기자 zzangjji@yonsei.ac.kr

/사진 김평화 기자 naei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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